#_몇 가지 이야기들
#_엉클분미

칠흙과도 같은 털, 우악스럽게도 생긴 뿔.
말이 없는 소가 매어놓은 끈을 끌르고 그 육중한 몸을 이끈다.
그의 이름은 '쿄우'.
숲 속에서 알 수 없는 신음 소리만을 낼 뿐, 주인의 손에 이끌려 되돌아갔다.

집을 떠난 아들이 원숭이 귀신의 형체로 되돌아왔다.
19년 전 죽은 아내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되돌아왔다.

잃었던 모든 것들이 되돌아왔지만
그 때 그는 현생에서 가진 모든 것을 잃기 위해
생의 마지막 날을 이끌었다.




#_첫인상

8년 전 너희 '둘'을 처음 보았을 때
말을 섞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던 감정들이 있었다.
감정은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지만,
분명 그러한 감정은 결국 '알게' 되는 것으로
남겨졌다.

결국 내가 옳았음으로 증명된 지난 8년의 세월.

"안녕_"




#_Marc

Marc이 Oxford로, 그리고 Paris로 되돌아가기 전 날 밤.
그에게 난 나의 favorite place를 데려가겠다고 하면서
'나무'엘 갔었더랬다.
간단히 맥주 한 병 씩을 들이키면서 그가 내게 했던 말이 자꾸,
아른거린다.

"leave your office,
meet the people and
dance with someone."




#_가을은

우스갯소리로,
'가을은 Rachael과 Damien의 계절' 이라고 했다.

1Gb의 아이팟 셔플에 들은 열 너댓 곡이 너무 지겨워진 요즈음,
하드디스크를 뒤적이다 Rachael의 곡들을 추려내어 따로 폴더에 넣어둔 것을 발견했다.
플레이리스트에 그녀의 곡들을 올려놓고서는
정말 그러한가보다 하고 있다.

'가을은, Rachael과 Damien의 계절'.




#_나의 마음은 황무지

신해철이라는 사내를 참 좋아했었다.
그러니까 고등학생이 막 된 무렵,
너바나와 넥스트에 푸욱, 빠져 살았었다.
그의 몇 안되는 영화 음악 작업 중에 '정글스토리'에 실린 곡 중에
'나의 마음은 황무지'라는 곡이 있다.
원곡은 산울림 3집의 그것으로,
신해철이 특유의 괴기스럽다고 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투철한 실험정신을 발판삼아
재해석한 곡이다.
그 곡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의 마음은 황무지, 차가운 바람만 불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그런 황무지였어요.
그대가 일궈놓은 이 마음,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기름진 땅이 되었죠'




#_노을지다

얼마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이과대학을 내려와
학술정보관을 지나 줄곧 그 내리막길을 걸어,
중앙 도서관을 곁에 두고 백양로 너른 길을 건너기 위해 좌우를 살피는데
그 때 본관 위 하늘엔
저녁 노을이 서쪽에서부터 자리잡아
북녘 하늘에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정문으로 빠져나가려고 줄을 이었고
그 길가 위에서 마주친 노을의 한 쪽 자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10분.
평균적으로 위 속에 끼니를 밀어넣는 그 10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백양로를 지나는 머리 위엔
노을도 다 사라져버리고 말아

위 속에 끼니를 밀어넣는 10분 동안에
마치 나의 젊음도 다 사라진 것 마냥
더없이 서글퍼졌다.

어리석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경외.
걸어온 길에 대한 변명과 후회.
그리고 다시 어리석음.

깜깜한 밤이 지나,
다시금 해가 뜰테지만

오늘 스쳐 지나쳐버린 노을을
내일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는 또 하루만큼 더 나약해져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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