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제법
제법 자랐나보다.
학교 가고,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의 반복.
밥과 물을 잊지 않고 주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모레를 갈아주는 것 외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를 늘상
책망하며 산다.
그러는 사이,
제법 자랐나보다.
물이 싫어 내지르는 그 큰 울음.
나를 박차고 뛰쳐나가려 세운 발톱의 우악스러움에
손 언저리 한 곳이 채여
지금까지도 발갛게 속살이 드러났다.
너는
그 풍성한 털을 한 가득 몸에 달고서
지금도 몇 자 적어내려가는 내 눈 앞에 비스듬히 누워
제법
길어진 몸뚱아리 한 가득
숨을 내지르고 있구나.
#_ meet me by the water
언젠가부터
혼자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숙련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어렸을 적
아무 때에나 집어들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그대로 주욱 읽어내려갈 수 있던 그 책에는
배기관에 호스를 연결해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해버린 친구를 떠나보낸
열 아홉 이후로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린 소년이 있었다.
그를 동경했다거나 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였을 따름이다.
너무 늦지 말았으면 한다.
#_ Jack coke
광화문 씨네큐브를 나선 것은 10시 50여분 즈음이었다.
제법 너른 도로 위를 좌우로 내달리는 무수한 차들 곁에 서서
신촌으로 가는 '아무' 버스나 기다리던 바로 그 때,
나는 왜 Jack coke이 생각났을까.
새단장을 한 미오.
누나를 찾아온 세 분의 손님.
여럿일 때, 사람은 무모해진다고 했던가.
취기가 오른 한 무리의 사람들.
서강대학교 물리학과의 그 분 그리고 그 분의 일행.
bar에 앉아 맥주 한 병 부터 비운 나.
두 병의 맥주와 두 잔의 Jack coke을 소모하는 와중에
함께 버리고자 했던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