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관하여 ㅡ
#. 우연에 관하여

2002년 5월의 일이다.
당시 캠퍼스는 중간고사를 끝내고, 아니 이미 학생들의 기억 속에는 저만치 먼 옛 일이 되어버렸고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제끼던 잔인하다는 그 4월의 기운도 모두 사라져버려,
연일 따스한 날들과 파란 티셔츠가 물결을 이루는 이른바 축제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길고 긴 백양로엔 더이상 차들이 다닐 수 없게 되고
양 길가로는 천막이 세워졌다.
천막 뒷 켠에서는 과방과 강의실에서 가져온 테이블과 의자를 이용해
삼삼오오 학생들이 모여 맛보다는 의욕이 앞선 음식들을 만들어냈고,
천막 앞 켠에서는 축제를 즐기는 학우들을 상대로 이런 저런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담배 위로 동전 올리기' 게임이었다.
저만치 약 3미터 앞의 땅바닥에 각종 담배를 새 것 그대로 펼쳐놓고
이만치 줄 그어놓은 곳에 서서 100원짜리 동전을 던져 담배 상자 위로 올려놓는 게 룰이었다.
담배 상자 위로 동전을 올려 단 돈 100원으로 2000원 가량 하는 담배 한 갑을 가져갈 수 있는 그런 게임.
우리들은 게임을 만들어놓고 오며 가는 학생들을 한 사람 두 사람 끌어모을 수 있었고,
제법 짭잘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때 우리 스스로도 어찌나 재미있게 게임을 했는지
나도 100원짜리 몇 개를 던져보았으며 ㅡ 비록 담배 한 갑 따 내지 못했지만 ㅡ
당시 그 상황을 담은 사진을 아직 내 컴퓨터의 '옛 사진' 폴더에 간직하고 있다.

그 때가 2002년 5월이었으니 근 10년이 흘렀다.
그런 것을, 2005년 9월 군에서 제대하여
다시금 서문 하숙촌에 정착하여 첫 학기를 다니던 무렵의 어느 저녁이었다.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어 하숙집에 내려와 저녁을 먹고,
3층, 내 방으로 올라와 잠시 컴퓨터를 켜고 소화를 시키며 '옛 사진'을 들춰보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왼 손을 곤색 면바지에 찔러넣고,
오른 손으로 100원짜리 동전을 든 채로,
저 멀리 담배 상자 위로 올릴 요량으로 잠깐 생각을 하던 그 한 장의 사진 속에,
작은 몸집의 내 뒤로 갈색으로 염색을 한 안경을 쓴 키가 큰 남자 아이가 '게임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를 알아본 그 순간이라니.

그는 우리 내무실,
통신병과 특기를 받고 전입 온
연세대학교 전자과에 다닌다는 나의 13개월 후임병이었다.

3년 전,
아직 우리의 얼굴에 앳된 티가 제법 묻어나던 사진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같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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