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mporary

27th July 2011

dcember_fifth 2011. 7. 27. 02:30

canon a35f, Oxford, UK Oct. 2009

#. 비닐 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책상 위에서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졸리운 눈으로 선잠을 자던 나루가 소스라치듯이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안주로 사온 짭쪼롬한 오징어포를 뜯는 순간이다. 몇 번을 기웃기웃. 그 때마다 매몰차게 돌려세웠더니 단념하고는 다시금 책상 위로 올라갔다. 아빠가 아까 간식 줬잖아. 남겨둔거 내일 또 줄게 ㅡ

#. 한 병 더 가져와야겠다.

#. 카프리가 좋다. 언제 마셔도 스물 한 살적, 흑석동 고갯길을 올라 문과대학 옥상의 동아리방. 아무도 없는 토요일 저녁 나절의 끈적끈적한 시멘트 열기 위의 지저분한 그 곳을 생각나게 한다. 고물상에서 주워왔을 법한 티비에서는 국가대항 축구 경기가 흘러나왔고, 나는 카프리 두 병과 함께 실패한 재수생의 패배감에 잔뜩 절은 채 눅눅한 동아리방을 지켰었다. 그 때 그 모습을 언제나 상기시켜준다. 그래서 카프리가 좋다.

#. 올해는 '비'로 기억될 것 같다. 여느해보다 많은 비가 뿌려졌다. 작년은 어떤 모습으로 남았던가. 제작년은. 2008년은. 관측기기 수업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각자 자신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학관 618호. 디귿자로 둘러앉아 한 사람, 한 사람 소회를 읊는다. 그 시간에 내가 했던 말은 'I'm screwed up.' 그랬다. 2008년은 그랬다. 제작년 그리고 작년은 아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게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 올해 휴가는 조용히 없애버렸다. 실은 울릉도엘 가보고자 했다. 길게는 4박 5일 정도, 섬을 주욱 ㅡ 돌아보고자 했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문제들 때문에, 올해 휴가는 조용히 없애버렸다. 대신 무박 1일 정도로 새벽 바다를 보러 다녀올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굳이 운동화가 필요하지도 않고,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그런 짧은 여행 말이다.

#. 지난 낮엔, 후배의 논문 제출을 도왔다. Astrophysical Journal의 web-site에 들어가서 교수님의 id와 password를 넣고, TeX file과 15개의 그림 file들을 upload, merge시키고, 제출했다. 나는 second author로 등재되었다. 얼마전 처음으로 '내 논문' 이라 말할 수 있는 paper가 발행된 이래로, 공저자로 몇 건 등재가 되고 있다. 쉬운 일도, 업수이 여길 수 있는 일도 전혀 아닌 일들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허ㅡ한 이 기분'은 대체 뭐지. 대체 뭐야.

#. 토요일엔 근 사 년 만에 '아랫 동네'엘 가볼 생각이다. 몇 몇 매장은 바뀌었을 것 같다. 사람은 여전히 많을 것 같고. 지하철 7호선, 청담역 바로 곁 6층짜리 그 학원은 아직 그대로일까. 강남대로를 철판으로 메꾸어놓고 그 아래에서 지하철 7호선이 아직 공사중이던 시절. 좁아진 차선 위에서 212번을 타고 나는 '그 으리으리한' 학원엘 다녔었다.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목, space.... space 뭐였더라. 이제는 정확한 이름도 기억이 안 나. space 어쩌고 ㅡ 인 편의점에서 피카츄 빵이 오백 원, 200ml 우유가 몇 백원. 어지간해서는 1천원이 넘지 않았던 아침을 가방에 챙겨넣고, 이제는 번호가 바뀐 옛 212번 노란 버스를 타고 공사중인 강남대로를 달려 청담역 상아아파트 앞에서 내리곤 했었다. 버스는 또 어찌나 콩나물 시루같던지. 그렇게 삼십 여분을 달려서 상아 아파트 앞에 도착해서는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 때 학원 앞 저만치에 검은색 다이너스티가 한 대 정차해 있었고, 뭐랄까, 그냥 딱 ㅡ 봐도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온 것과도 같은' 여학생이 차에서 내리면서 '아빠, 다녀올게' 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십 일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어.

#.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그 여름,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었는데 '이 학원 다니냐면서' 우산을 씌워주던 그 치과의 간호사분은 지난 십 일년간, 행복하셨을까 ㅡ 정말 고마웠는데.

#. 내일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타박타박타박타박타박타박타박타박 ㅡ 빗소리 가득한 수요일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