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글 1건
2010.12.12 누군가의 무덤 앞에서
누군가의 무덤 앞에서




별의 별 사람들이 있었다.
그 폐쇄된 공간 안에 있는 300여 명의 사람들.
그 중 매일 부딪히고 사는 80여명의 사람들 중엔
정말 특이한 사람들이 많았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 첫 번째가
대학에 들어와서였다면,
그보다 훨씬 좁은 사회에서였지만
그보다 훨씬 큰 충격으로 다가온 곳이 바로
군대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실소를 자아낼만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떤 날엔가엔,
(눈이 많이 내린 2월이었다)
행정반에서 나를 불렀다.
'후ㅡ 아- 아- 행정반에서 알려드립니다. 이병 xxx은 지금 즉시 행정반으로 오십쇼'.
행정반에서 이등병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럴 경우 응당 고참들은 '너 뭔 잘못했어?' 혹은
'너 무슨 빽이라도 있냐?' 정도의 반응.

그 날은 평일이었는데,
일과의 시작 전 행정반으로 불려간 나는
곧 설을 맞이하여, 부대 내에 있는 산소에 성묘 올지도 모를
'민간인'의 출입을 대비하고자,
산소의 비석에 새겨진 글귀를 읽어오라는 것이었다.

사실 옥편 하나만 들고 올라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군대는 어떠한 종류의 불확실성도 갖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다 온 놈이라고
이 놈은 옥편 들고 올려보내도 한 나절이나 보내고나서
'못 읽겠는데 말입니다' 할 것 처럼 보이진 않았는지
나를 불러세워놓고 비석의 글귀를 읽어오라고 옥편을 들려보냈다.

그렇게 자그마한 낡고 닳은 옥편을 하나 들고
눈 덮인 막사 뒷편 2지대로 올라가
누군가의 무덤 앞에 쪼그려앉아
비석에 쌓인 눈을 털고
한 자씩,
한자를 읽었었다.
 

"東萊鄭氏 貴分之墓"


그리고 그 해 설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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