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6. 11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걸 몇 조각 먹으면서,
랩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했다.
살이 찔까봐 잘 주지 않는 몇 가지 '맛있으나 몸에는 좋을리 하나 없는' 그런 먹거리를 주어야겠구나,
오늘은 그래도 되는, 몇 안되는 날들 중 하나겠지. 라고 생각하고는
아랫 찬장에서 맛있어보이는 것으로 하나 꺼내어,
익숙한 캔 따는 소리를 들려주자, 
귀신과도 같이 알고는 달려와 옹알대는 녀석.
3번에 나누어주겠노라며, 그것마저도 조금만 접시에 덜어내어 내놓았다.
얄팍한 이불 위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나흘도 넘게 쉬지 않고 내리는 빗소리를 병풍삼아
포클의 그 분이 보내준 old boy ost 중에서 몇 곡을 재생시켜놓고는
몇 글자 적어볼까하여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서문'에 살 적엔,
아 ㅡ 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이름인가.
그러니까 지금보다 덜 여유로웠고,
지금보다 더 각박한 마음 한 가득 안고 살던 시절,
지금보다 더 옹졸했으며,
지금보다 더 속좁았고,
지금보다 더 치열했던 시절.
지금보다 더 멍청했던 그 때 그 시절엔
이따금씩 이런 저런 생각들을 나름 수월하게 그리고 또 시원시원하게 풀어냈었다.
그러나 늘어난 생각만큼 되려 줄어든 말수는
별 것 아닌 한 살, 한 살 나이먹어가고 있다는 반증일까.

여느 토요일이었다면,
지금 이 시간엔 '나무'의 나무 의자에 앉아서,
나뭇결이 잔잔히 그리고 번드르르,
노오란 등불 아래 은은히 빛나는 bar에서
언제나 스물 한 살, 흑석동 문과대학 옥상을 생각나게 만드는 카프리를 두어 병,
그리곤 잭콕을 두어 잔,
미오가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Maximilian Hecker와, Elliott Smith와, Damien Rice와, Rufus Wainwright와, Norah Jones.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지루한 플레이리스트가 한 바퀴, 두 바퀴 다시금 쳇바퀴를 돌았을텐데.

며칠 전 그렇게 게워내고 난 뒤로는
이 무슨 쓸데없고, 비생산적이고, 역겨운 짓이냐며.
그러지 말자고, 그러지 말자고.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 본성은,
본디 이러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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