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mporary글 97건
2010.06.01 봄날, 벚꽃 그리고 너 1
2010.06.01 상실에 관하여 ㅡ
2010.05.27 '한 마디' 4
2010.05.27 아버지의 카메라. 2
2010.05.27 email 하나 ㅡ
2010.05.23 all cleaned out... 1
2010.05.22 아카시아 2
2010.05.20 다소 너그러워질 시간에 1
2010.05.19 기다리며 4
2010.05.17 clear 2
봄날, 벚꽃 그리고 너




스무살 적엔 스무살의 가치를 몰랐다.

그 이전에 비명횡사하는 경우만 제외한다면,

그런 불행을 피하기만 한다면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그것은 극소수를 제외한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만큼

그만큼 값어치가 덜한 줄만 알았다.

 

그 때엔

나를 무척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난 이미 더이상 변하지 않는 온전한 인격체로 존재하는 줄만 알았다.

고등학생 때의 많은 일들을 뒤로 하고,

이제는 해질녘 동산 위에 우뚝 서서 밤이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큰' 사람처럼.

더이상 나는 성장하지 않을 것으로만 알았다.

 

그 때엔

다른 사람들을 몰랐다.

'온전한 인격체'로 우뚝 섰다고 생각한 '나'만을 알았다.

그 때엔 다른 사람들을 몰랐다.

타인의 기호, 타인의 취향, 타인의 생각, 타인의 사상.

다른 사람들을 몰랐다.

오로지 '나만 알았다'고 생각 '했었다'.

 

곧게 오진 못했어도,

그럭 저럭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스물 아홉에 이르렀다.

스물 아홉에 이르러보니

조금은 다른 사람을 알겠다.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만큼, 비로소 나도 알겠다.

스무살의 가치를 알겠다.

그 시절의 나를 알겠다.

그리고,

그 시절의 너를 알겠다.

 

우린 어렸고,

스무살의 우린 다만 우리를 몰랐을 뿐이다.

 

그렇게 조금씩 엇나간 우리들의 미묘한 톱니바퀴는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걸,

 

이제와서야 알겠다.

 

 

 

 

ㅡ 스물 아홉, 자정에 가까운 어느 봄날에.


상실에 관하여 ㅡ
 

어제의 일이었다. 연구실에서 이런 저런 서류를 챙겨서 교내 은행으로 향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때는 한 낮이었고, 이과대학의 정문은 개방되어 있었다. 때문에 야간 출입증으로 사용하는 학생증을 미리 꺼내어들고 있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랬을까. 분명히 학생증을 손에 들고서,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메운 묵직한 공기 덩어리를 휘이ㅡ 휘이ㅡ 휘젓고 있었다. 손 안에서 이리 저리 돌려지던 학생증. 무려 12년 전의 사진을 한 켠에 박아놓고는, 그래, 그 빠알간 넥타이가 인상적이었지. 까까머리의 내가 멋적은 표정의 내가 그 안에 있었다.
 은행에 들러, 업무에 필요한 돈을 인출하고서, 거액의 현금을 가방 안에 넣고서는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다소 늦은 점심. 점심을 먹고서,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정문,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을 때 그 때, 바로 그 때 나는 알았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너무나 오래도록 함께여서 그 존재 가치가 서서히 희석되어버린 얇은 증서 하나. 언제 나를 떠났는지조차 나는 모르고 있었다.
 너무 가까웠고, 너무 친숙했고, 그래서 오히려 소중함을 몰랐던 존재.

 2년 만에 맞이한,
 바로 이 상.실.
'한 마디'

그리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일 수는 없겠으나,
그다지도 읽지 않는 책 중에서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한 마디'가 있다.

'당신, 지금 어디에 있어요?'
ㅡ 미도리, [상실의 시대]의 말미에.
아버지의 카메라.

초점과 iso 세팅을 제외한 그 어떤 조작도 허용하지 않는 아버지의 카메라.
필름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만들어준 카메라이지만,
동시에 더 나은 성능과 더 나은 기계적 능력의 바디를 찾게끔 만든 카메라이다.

그러나 지금와서 생각해본다.
사진은 사진가의 마음으로 빚어내는 사진기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사진기에 의존해서
사진가의 마음을 잃어버리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email 하나 ㅡ
의자 바닥에 좀 커다란 봉 같은게 있어요.
그걸 바닥 방향으로 끝까지 돌려서 내려주면
의자가 뒤로 잘 젖혀집니다.
 
보다 안락한 수면을 위하여 -_-;


2008. 2. 18. 23:23:03 KST
all cleaned out...
2003년 12월.
서울보다 개성이 더 가까운,
경기도 연천군 전곡 땅으로
엽서가 한 장 날아들었다.

'규석아,
Elliott Smith가 자살했단다...'

관물대 앞에 서서 조심스레 노란 관제엽서를 읽어내려가던 나는
더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All cleaned out...
그대 말마따나....
아카시아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Caffe Caffe에 들러 따스한 카라멜 마키아또 한 잔을 뽑아들었다. 비가 내리는 듯 마는 듯, 촉촉하게 여름으로 향하는 환영의 인사라도 하듯, 그렇게 내리는 토요일의 밤이다. 모두가 정문을 나서는 속에, 교정을 거슬러 오르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인 듯 했다. 어느덧 체육관을 지나 과학관 즈음에 이르렀을 때엔,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이 살며시 날아들었다. 밤은 까맣게 내려앉았고, 도서관마저 불 꺼진 층이 어둑하게 자리한 시각, 어디에서 스며들었는지 모를 아카시아 향에, 나도 모르게 그만 그 말이 생각나버렸다.
'그래도 마음은 부자가 아닐껍니까'

이런 일 그리고 저런 일로
마음의 부자가 되어버린 밤을 맞이하였다.

고맙습니다.
다소 너그러워질 시간에

주말이라는 다소 너그러워질 시간에,
바다엘 다녀오고 싶어졌다.

기다리며

'어떨까' 하고 시작한 필름이었지만
이제는 빠져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 바르낙 그리고 즈마론을 기다리며.
clear
나흘 간 열심히 찍었던 필름 두 롤이
'모두'
헛고생이었음을 알게되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직도 손 맛이 덜 익은건가,
와인딩 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나만의 결정적인 순간들은
그렇게 애시당초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실수하지 말자.
다시는.



덧.
정말 뽑고 싶은 사진이 딱 한 장 있었는데.....
속상한 월요일 저녁.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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